모던타임즈와 채피

 제목에 이 두 영화를 묶어 놓은 이유는 뭐 별 다른 뜻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어제 이 두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스포주의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도 그렇습니다만 미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이러한 ‘명작’들에 대한 감상은 어느 정도 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모던타임즈> 역시 그냥 보면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돋보이는 단순한 풍자극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견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70~8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꿋꿋이 인구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이것들이 후세에 이어지는 작품들에게 하나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경영학에서 테일러리즘의 비판점에 대해 공부할 때 주로 참고자료로써 이용되는 <모던타임즈>의 초반부는 기계화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 정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계에게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 그나마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CCTV로 내내 감시당하며 자신들 또한 기계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노동자들을 부품 취급하며 효율만을 따지는 사장까지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다소 진부하기도 한 비판점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직도 <모던타임즈>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이러한 진부함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1936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기준점으로 삼아 만들어진 많은 작품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만들어져서 디스토피아 문학의 바이블이 된 조지 오웰의 <1984>가 <모던타임즈>가 나온 뒤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1949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80년의 풍파를 겪어온 이 주름 자글자글하고 유쾌한 할아버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찰리 채플린의 목소리가 최초로 등장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단 한 씬에서만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후반부의 애드립으로 노래를 부르는 씬입니다. 이 노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하는 주인공이 가사를 까먹게 되자 프랑스의 샹송인 ‘나는 티티나를 찾으러 왔소’의 멜로디에 적당히 외국어 같은 가사를 붙여서 마임과 함께 적당히 흥얼거리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씬이 무성영화를 사랑하던 채플린이 유성영화를 통해 채플린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관객들의 요구에 대해 반항기 가득한 마음을 담아 만든 씬이라는 해석이 있더군요. 이러한 해석은 어찌보면 기술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비판하고 있기도 한 이 영화의 특징과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2011년에 개봉한 무성영화 <아티스트>가 기술의 발전이 작품성의 발전을 보장하는지에 대해 우회적인 의문을 던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찰리 채플린의 애드립 노래는 더더욱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채피>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앞서 이야기한 <모던타임즈>와는 정반대로 1년도 안되서 잊혀질만한 영화일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흥행이 똥망하고 들려오는 평가 역시 굉장히 좋지 않았던 바람에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관람했는데 그 덕분인지 생각보다 크게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영화를 친구에게 추천할 거냐?’라고 묻는다면 ‘어......음......’하면서 10초간 고민하다가 결국엔 ‘할 거 없으면 봐’라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했던 부분은 바로 자신들이 내세운 주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뭔가 이야기가 좀 쉽게쉽게 흘러간달까요? 로봇윤리에 관한 문제를 인간의 마음이나 AI가 만들어낸 마음이나 똑같다는 전제로 다루어 보려고 한 모양인데 여기서 문제는 정작 그러한 로봇윤리에 대한 고찰이 영화 속에선 전혀 없습니다. ‘로봇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으로 이어져야 결국 ‘로봇과 인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으로 귀결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점들이 전부 생략이 되어있습니다. 특히 디온과 욜란다의 예토전생 부분이 가장 심한데 마음을 로봇에 정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영생에 대한 고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디온은 그냥 ‘오 씨발 살아남ㅋ 놀라움ㅋ 개이득ㅋ’ 정도로 끝납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엔 아무렇지도 않게 욜란다를 살려내죠. 그리고 영화는 걍 끝납니다. 하다못해 제가 저 상황이 되었어도 처음엔 좀 좋아했겠지만 ‘아, 난 먹지도 못하고 쎾쓰도 못하고. 난 인간일까?’ 라는 의문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채피>는 그냥 막 살려내고 거기서 그냥 끝내버려요.

 

 혹시 우리는 애기처럼 행동하는 로봇과 사람의 마음을 로봇으로 이전시키는 장면을 보여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의미일까요? 차라리 애기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뭔가 그럴듯한 과학적 과정을 통해 탄생시켰다면 ‘와, 저런 로봇이 생겨나면 우리는 로봇을 어떻게 대해야할까?’라고 고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채피>에선 그런 부분이 전혀 없죠. 그냥 공돌이인 디온이 별다른 생각 없이 학문적 호기심 때문에 994일 동안 레드불을 빨면서 만들다가 탄생했을 뿐......

 

 하지만 우리더러 그냥 알아서 생각하라는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해주기엔 유감스럽게도 로봇윤리를 다룬 다른 좋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바이센테니얼 맨>과 <A.I.>가 있네요. 하다못해 로봇윤리라는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먼 <터미네이터2>조차도 주인공과의 우정을 암시하는 좋은 연출이 있었죠.

 

 그나마 신선했던 점은 악당들의 컨셉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찌질한 양아치들이긴 한데 극히 일빠스러운 남자 악당인 닌자도 그렇고 만화를 본다거나 아이들 낙서 같은 그래피티 등의 동화적이고 유치한 악당들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니 영화에서의 배역 이름이 그대로 나오길래 뭔가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남아공의 힙합 그룹이더군요.


 

 이 양반들이 채피에서 '사실 얘네들도 착했어' 컨셉으로 나오는 악당들인데...이 사진을 보니 <채피>에서의 동화적 컨셉은 비단 영화 속 컨셉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군요(...)



by 루카스 | 2015/03/28 01:18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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