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트 원티드 맨]무미건조한 스파이의 세계(스포)



 이 영화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급해야할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원작자인 존 르 카레입니다. 그는 첩보 스릴러 장르에서 손꼽히는 영국의 유명한 작가로써 본 리뷰에서 다루는 <모스트 원티드 맨>은 물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콘스탄트 가드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의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존 르 카레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하나같이 공통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 르 카레는 첩보전, 혹은 첩보전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집단에 의해 인간성이 배제된 단순한 장기말로써 다뤄지는 모습을 특유의 싸늘할 정도로 담담한 필체로 묘사하기를 즐깁니다. 또한 덤으로 씁쓸한 뒷맛까지 안겨주죠. 이 <모스트 원티드 맨> 역시 이러한 작가의 주제의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본작의 주인공인 군터 바흐만은 첩보원이라는 그의 직업적 특성상 목적달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을 이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상적인 사고관을 고수하고 있죠. 이러한 바흐만의 애매한 태도는 독일 정보부가 갖고 있는 집단주의적 사고와 그의 인간성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바흐만은 이러한 태도 때문에 그의 실패가 기록된 리스트에 한 줄을 더 추가하게 되지만 허탈해하면서도 정보부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자신의 딜레마 속에서 계속 발버둥 쳐보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 앨런 리머스가 베를린 장벽에서 그의 애인과 함께 목숨을 잃음으로써 그러한 딜레마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바흐만의 애매한 태도가 결국 타인을 이용한다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비겁한 타협안이라는 관점 역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바흐만이 마사에게 수없이 상실된 인간성의 목적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그녀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점, 그리고 압둘라의 체포에 대해 마사가 바흐만에게 궁극적인 목적을 물어보았을 때 그녀의 대답을 그대로 인용한 점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결국 바흐만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간에 안전한 세상을 만든다는 핑계거리를 앞세워서 리히터를 납치하는 등, 타인의 삶을 짓밟는 냉혈한 첩보원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또한 이 부분은 마사 역시 일방적인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바흐만과 같은 존재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모두가 집단주의라는 비극의 산물’이라는 메시지는 존 르 카레가 지난 몇 십년간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존 르 카레의 작품을 자주 접하신 분들이라면 몇 십년간 이어진 일관된 주제가 지나친 동어반복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냉전이 아닌 9.11 테러 이후 무슬림들에 대한 감시가 심해진 현대의 독일을 다루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무슬림 중에서도 하필이면 러시아에서 망명해온 체첸인을 중요 인물로 삼았다는 것은 결국 몇 십 년이 지나고 냉전까지 끝난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인간성의 상실은 예전과 다름없다는 작가의 의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처럼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고 지하디스트의 자금줄인 압둘라를 첩보자금의 조달역으로 바꾸면 아무런 위화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개별적인 영화가 아닌 존 르 카레의 작품을 통틀어서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잡티에 불과합니다.





 원작자의 성향이 이렇다보니 영화의 색감도,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착 가라앉아 있습니다. 감독의 이러한 연출은 낭만적인 색체와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원작과 아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머지 회의감에 찌들어 있는 늙은 스파이인 군터 바흐만을 아주 확실하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연출에 있어서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촬영방식입니다. 본작의 컷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화면구성이 굉장히 정적이지만 화면 자체는 핸드헬드 방식으로 촬영한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들이 첩보원이 되어서 옷 속에 숨겨놓은 감시카메라 따위로 그들의 행동을 엿보는 기분이 들게끔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연출이 가장 돋보이는 것이 위의 두 씬입니다. 위의 씬은 CIA 요원인 마사와 함께 아시아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죠. 이 씬의 구도를 보면 마치 관객이 거리에 서서 커피를 홀짝이며 그들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식으로요.(이 장면 역시 이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두번째 스샷에 담긴 엔딩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뒷자석에 앉은 누군가가, 혹은 뒷자석에 설치된 카메라가 자동차 내부를 계속 관망하는 듯한 구도죠. (이러한 구도가 20초 이상 지속된다는 점 역시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렇게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을 감시하게끔 만드는 연출은 무미건조한 현실에 찌들어 있는 영화의 분위기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쯤에서 리뷰를 마치면서 끝으로 본작을 자신의 유작으로 남기게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명복을 빕니다.


by 루카스 | 2014/12/07 17:16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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