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 오래간만이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2차대전 영화


 우선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의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는 정말 오래간만에 나오는 2차대전 전쟁영화라는 점일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2차대전 영화 중에서도 전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흔치 않은 영화라는 점일 것입니다. 사실 전쟁영화, 특히 시대적 배경이 2차대전인 영화에서 전차는 거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합니다만 <퓨리>처럼 전차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끽 해봐야 <패튼 대전차 군단>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것 역시 패튼이라는 인물을 조명하면서 그와 함께 전차가 많이 등장할 뿐이지 개별적인 전차를 중점적으로 묘사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의의를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운 편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실망이었던 점은 주제의식을 너무 직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매몰을 보여주고 싶다는 건 알겠는데 그 방식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직접적입니다. <퓨리>에서는 포로를 죽이거나 주인공인 노먼과 눈 맞았던 여인이 죽는 등의 너무 뻔한 시퀀스와 함께 극의 곳곳에는 잔혹한 장면들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마치 영화가 저에게 ‘자, 이게 전쟁의 참상이야.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않아? 그렇지? 맞지? 응?’ 이라고 자꾸만 되묻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참혹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흔하디 흔합니다. 이렇게 흔한 주제이기 때문에 영화가 신파적이고 뻔한 수작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심도 깊은 묘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 <퓨리>는 서투르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바이블과 쿤 애스의 대사입니다. 바이블은 영화 초반부에 새로 전입 온 불행한 행정병 노먼에게 ‘곧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죠. 그리고 자기와 눈 맞았던 독일 여자의 죽음을 목도한 뒤 발광하는 노먼에게 쿤 애스는 ‘이런게 전쟁이야!’라고 말하죠. 저는 이때 진짜 손발 오그라드는 줄 알았습니다.(게다가 노먼과 눈 맞는 독일 여자의 시퀀스는 너무 얄팍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쟁 영화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주제 의식을 저렇게 노골적인 대사로 표현해버리면 당연히 그 풍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쉰들러리스트>가 왜 명작인지 새삼 다시 느껴봅니다. ‘전쟁은 잔인해!’라는 대사를 백마디, 천마디 넣는다고 해도 빨간 옷을 입은 소녀에게 관객들이 가졌던 일말의 희망을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몽땅 앗아가 버리는 <쉰들러리스트>의 연출에는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물론 <퍼시픽>도 마찬가지이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누구도 ‘이게 전쟁이야!’, ‘전쟁은 잔인해!’ 같은 대사는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퓨리>로써 확고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싶었으면 좀 심도 깊게 만들던가 아니면 그냥 아싸리 오락용 전쟁영화를 만들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을 크게 느낀 부분이 후반부의 교차로 전투 시퀀스인데 솔직히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영화치고는 마지막 전투 시퀀스가 너무 전형적인 전쟁영웅의 묘사 같았습니다. 특히 독일군이 전차 하나를 두고 너무 멍청하게 싸우는 것과 더불어 영화가 막을 내리기 직전 하이앵글로 묘사되는 퓨리와 그 주변의 독일군 시체들은 도데체 이게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전차 하나로 이만큼 죽였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만들 바에는 차라리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같은 분위기로 전차전 시퀀스나 두, 세 개 더 넣어줬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아무리 <퓨리>의 시대적 배경이 유럽 전선의 끝물인 1945년 5월이라지만 기대했던 전차전은 너무나 적더군요. 전차전이야 말로 <퓨리>가 전쟁 영화로써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일텐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차라리 시대적 배경을 노르망디 상륙 직후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전차전이 좀 더 많이 나와도 납득이 될만한 배경이니까요.



by 루카스 | 2014/11/28 16:28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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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4/11/28 23:47
저도 전쟁영화 매니아인데 이 영화만큼은 보다가 대사나 작위적인 상황으로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좋은 전쟁영화는 사실적인 묘사 자체로 그 잔혹함이 진하게 표현되는데 포로니 여자니 너무 억지스런 전개가 가득했습니다.
오락용으로 만들려면 아주 호쾌한 버디물로 만들 것이지 캐릭터도, 주제도 어정쩡한 이 영화가 이상하게 이글루스에서는 호평이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Commented by 루카스 at 2014/11/29 15:15
뭐 저도 <퓨리>에 참신한 걸 바라진 않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진행방식이 너무 뻔하더군요. <퓨리>만큼 뒷 내용이 너무 눈에 훤한 영화는 굉장히 오랜만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사나 주어지는 상황들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구요. 특히 독일 여자는...그 여자 때문에 노먼이 변했다고 납득해주기엔 비중이나 작중에서 흐르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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