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사상자들(1989),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대략적인 줄거리(네이버 영화 펌)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 때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1969년 뉴요커지에 다니엘 랭 기자가 최초로 공개했다.}
  에릭슨(Eriksson: 마이클 J. 폭스 분)은 베트남에 온 지 한 달도 채 못되는 신병이다. 그의 소대원들이 정찰 임무 도중 마을에 잠입해 자고 있는 마을 처녀를 납치해 윤간하고 살해하자 울분을 느끼고 상부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군 책임자들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라며 오히려 에릭슨을 힐책하고 후환이 두려워진 동료 소대원들은 에릭슨의 입을 막으려고 죽이려 든다. 실의에 빠진 에릭슨은 우연히 군목사를 만나 그 살인 사건을 토로하자 강간 및 살인 사건에 가담한 동료 소대원 네 명은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극중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허버트 해처(Herbert Hatcher)는 살인혐의에 무죄판결을 받았고, 항소시 그의 강간혐의가 전도되어 재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그의 자백은 헌법상 기각되었다.}



태평양 전쟁과 월남전을 다룬 영화를 몇개 보다보면 몇가지 공통점을 느끼게된다. 그것은 바로 지리 환경적인 유사함과 그에 따른 전투의 양상, 그리고 이런 지옥의 틈바구니 속에 덩그러니 놓인 인간이란 존재가 무너져가는 과정이다.

과달카날과 케산에서의 미군들은 무더운 날씨와 텁텁한 공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글, 여기저기 득실거리는 말라리아 모기, 그리고 잊을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스콜과 같은 극한의 환경과 더불어 살인행위를 정당화시키거나 그대로 수용해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노출된다. 게다가 그들의 상대는 흡사 유령과 같이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 속에서도 숫자가 줄 기미를 보이지 않은데다 보이지 않는 밀림 속이나 땅 속에서 총탄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둘씩 무기력하게 쓰러져가는 동료를 보며 미군들은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신이 자신들을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신은 악랄하게도 이런 상황을 버틸만큼 인간이란 존재를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인간의 이성은 무너져간다. 여기서 더욱 비참한 사실은 바로 이렇게 한계점에 다다른 이성의 붕괴가 다수에게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소수의 정신적 박약함 때문이 아닌,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내가 굳이 태평양 전쟁과 월남전을 비교한 이유는 바로 이전에 소개했던 [퍼시픽]과 이번에 소개할 [전쟁의 사상자들]이 이러한 두 전쟁의 공통점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의 군상들을 보며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시픽]과 [전쟁의 사상자들]이 다른점은 [퍼시픽]의 경우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인간상을 지켜보고 고뇌한다면 [전쟁의 사상자들]의 경우 주인공인 에릭슨 일병의 분대원들이 동료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베트남 여자를 납치, 강간하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혐오와 고뇌를 담고 있다. 오히려 [전쟁의 사상자들]처럼 동료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인간성이 상실되가는 과정은 2010년 작품인 [아르마딜로]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두 영화이지만 결국 [전쟁의 사상자들]에서 일컫는 '전쟁의 사상자들'은 퍼시픽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든 모든 인간이다. 그것은 강간 당하고 결국 죽임까지 당한 베트남 여성이나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 속에서 죽어간 베트콩들, 그리고 이런 짓을 자행한 미군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죽임당한 베트남 여성의 시신과 미군 건쉽들의 로켓세례 속에서 죽어간 베트콩들, 그리고 그 폭격에 휘말려서 함께 죽은 미군의 시신을 차례로 보여줌으로써 이런 주제의식을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의 사상자들]은 [퍼시픽]과 마찬가지로 반전의식을 확고하게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의 모든 면이 만족스럽진 않았다. 영화는 주인공인 에릭슨이 종전 후 지하철에서 동남아계 여성을 보면서 이 사건을 회상하고 이 여성과의 대화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문제는 영화 극후반부에서 이 여성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 여성의 대사는 '악몽을 꾸셨나봐요? 이제 끝날 거에요.'이다. 이는 베트남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가해자들의 재판에 뒤이은 장면으로써 월남전에 대한 반성과 화해를 의미한다고 본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생각해보면 미군은 화해를 허락 받아야하는 입장일 것이다. 즉 이러한 일방적인 화해의 선언도 결국엔 미국인의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베트남인들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주연인 숀 펜의 연기일 것이다. 숀 펜은 9년 뒤 태평양 전쟁을 다룬 [씬 레드 라인]에서도 주연을 맡게되는데 이 두 영화를 비교해본다면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연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씬 레드 라인]에서의 숀 펜이 전쟁에 찌들고 지친 염세적인 해병대원의 모습이라면 [전쟁의 사상자들]에서의 숀 펜은 그야말로 전쟁의 광기에 젖어 미쳐버린 모습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목소리 자체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만큼 숀 펜의 연기는 자칫 어찌보면 흔한 주제를 다뤄서 평범해질 수 있는 영화를 수작에 가까운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주연을 맡게된 숀 펜과 함께 이 영화에 출연한 돈 하비, 존 C. 레일리가 모두 [씬 레드 라인]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태평양 전쟁을 다룬 작품이니 만큼 앞서서, 그리고 이번에 소개한 영화들과 비교해보고 싶다. 그런데 하도 예전에 본 작품이라 제대로 기억이 안날뿐더러 러닝타임이 3시간에 육박하는지라 언제 다시보고 리뷰를 쓸지 장담할 수가 없다;;; 뻐킹 분량;;;

by 루카스 | 2012/11/08 01:39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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