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담백해진 마이클 베이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쟁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그리고 오래간만에 마이클 베이 영화 좀 볼까 싶어서 개봉하자마자 관람한 영화입니다.

 일단 트랜스포머4를 상상하면서 이 영화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계실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굉장히 상식적인 호흡을 가지고 만들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마이클 베이가 그간의 액션영화에서 거의 철칙처럼 지켜왔던 '초반 5분에 일단 뭔가 하나를 때려 부순다'라는 룰마저 깼습니다. 마이클 베이가 굉장히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라 그런지 이것저것 신경 쓴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벌러 타국살이를 하며 괄시받는 용병들의 묘사라거나 혁명 이후 리비아의 기묘한 분위기라던지요. 다큐멘터리적인 성격까지 고려해서 만든 모양인데 폭발물 포르노 수준이었던 트랜스포머4에 비하면 제법 정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예전에 리뷰했던 <론 서바이버>와 굉장히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점도 그렇고 소수정예와 다수의 아마추어 민병집단의 대결이라는 전투의 구도, 그리고 영화 끝자락에선 영화 속 인물로 활약했던 실존인물들의 사진을 넣어주는 지극히 진부한 연출까지도요. <13시간>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마이클 베이 영화치고는 꽤 담백하다는 점입니다. 뭔가 계속 터트리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 대신 그래도 멀쩡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게다가 <론 서바이버>가 그랬던 것처럼 실화를 각색하면서까지 천조국의 우월한 공군력으로 적들을 튀겨버리는 통쾌한 마무리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식의 마무리는 하지 않더군요. 이런거 좋아하는 마이클 베이치고는 의외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재미있었느냐?라고 묻는다면...아뇨. 그렇진 않았습니다. 좋게 말해서 담백하다고 표현한거지 솔직히 좀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총 쏘고 터트리고 난리나는 건 좋은데 이 영화만의 특색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론 서바이버>에서는 신나게 구르기라도 했지 이 영화의 전투는 그냥 기지 방어하면서 총 쏘다 끝납니다. 굳이 특색을 꼽으라면 좀 더 사실적(이어 보이는) 총격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잘 몰라서 이 정도로 밖에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이클 베이가 다루고 싶어했던 민간 특수 용병들의 감정도 상투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난 아들이 셋이 있지.', '아내가 임신했대!', '집에 가고 싶어' 같은 감정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묘사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도입부도 정말 구구절절해서 시작한지 1분만에 벌써 지루해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더욱이 이 영화를 좋게 볼 수가 없는 건 이 영화가 지극히 미국 중심의 영화라는데에 있습니다. 이건 제가 미국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런 면 때문에 영화에서 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리비아 테러 단체를 무슨 당연한 듯이 쏴죽이는 존 웨인 영화 속 인디언처럼 묘사를 해놨습니다. 물론 대사관에 테러를 가하고 영사를 죽인 테러 단체가 '사실은 그들도 착한 녀석들이었다능...'과 같은 묘사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혁명 이후 리비아의 혼란기에 대한 고찰, 아니 최소한의 맥락을 짚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막말로 리비아 테러단체가 심심해서 미 영사관을 공격했을까요? 지금이 2001년도 아니고 이미 아프간과 이라크 전을 다룬 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입부에 '안전주의 등급을 받은 미 영사관 중 2개가 리비아에 있다'라는 식의 텍스트를 넣는 건 괘씸하기까지 합니다. 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데 제가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요.


Grade : 2 / 5

by 루카스 | 2016/03/03 20:46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0)

[헤이트풀8] 에이 뭐야 평범한 타란티노잖아?



 일단 미리 말해두겠습니다만 위에 달아놓은 글 제목은 좋은(?) 의미로 쓴 겁니다. <헤이트풀8>은 ‘타란티노’하면 으레 떠올리는 요소와 기대감이 고스란히 밀집된 영화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장고>가 시대극으로써의 서부극이라면 이번 <헤이트풀8>은 장르로써의 서부극에 좀 더 가깝습니다. (물론 서부장르와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ost와 함께 옛 서부 영화의 향취가 물씬 풍겨오는 복고풍 크레딧의 긴 오버추어로 시작됩니다. 늘 서부영화를 동경하고 사랑해왔던 타란티노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잠시 추억에 잠기며 서부극의 향취를 음미하던 중 조우한 것은 6마리 말이 끄는 역마차와 그것을 시체더미로 가로 막고 있는 한 흑인. 여기서부터 다시 눈을 뜬 타란티노는 당연하다는 듯이 본인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자연스러운 플래시백, 입 다물기를 원치 않는 등장인물들, 밀폐 공간에서의 서스펜스, 유혈의 낭자, 역설적인 도구로써 함유되는 대중문화(삽입곡), 그리고 타란티노의 장기인 자연스럽고 익살맞게 구사되는 흑인 슬랭(과 그것을 구사하는 사무엘 L. 잭슨) 등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도구들을 신나게 꺼내놓습니다.


 특히 영화의 대부분이 잡화상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의 반가운 냄새도 많이 납니다. 이와 같은 밀폐 공간에서의 서스펜스는 타란티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데 이 영화와 <저수지의 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트루 로맨스>에서 갱단 보스 코코티와 주인공 아버지와의 대담이라거나 <바스터즈>에서의 카드 게임, <장고>에서 슐츠 박사의 최후 등 밀폐 공간에서의 서스펜스를 잘 살린 주옥 같은 씬들이 유독 많은 감독입니다. (<킬빌>에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이 영화만큼은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생각이 안나네요.) 쿠엔틴 타란티노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아마 <헤이트풀8>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S. 개인적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먹는 씬이 유독 인상 깊다는 점인데 이번 <헤이트풀8>에서도 역시 먹는 씬이 나옵니다. 저는 이런 씬들을 타란티노의 텍스트가 영화로 옮겨진 흔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소설의 서브 플롯이나 추후에 보강되는 곁가지 플롯으로 자주 애용되는 것이 식사 중의 대담이기 때문입니다. 각본을 소설 쓰듯이 쓰는 타란티노다운 모습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제가 타란티노의 먹방 씬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스터즈>에서의 스트루델에 크림 발라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서스펜스와 허기를 동시에 느꼈던 씬은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P.S.2 커트 러셀, 팀 로스, 마이클 매드슨 등 반가운 얼굴들이 삭은(?)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Grade : 4 / 5

by 루카스 | 2016/01/17 19:31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2)

[시카리오] 무력감이 느껴지는 영화



 이 영화가 선사하는 무력감은 일종의 정수(精髓)와도 같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감 속에서 첫 부임 때부터 문을 걷어찼다는 케이트 메이서의 정의를 믿게 됩니다. 정의를 수호하는 여자 수사관. 뭔가 익숙한 그림이 그려질 것도 같습니다. 그런 이미지와 함께 우리는 일직선으로 달리는 플롯과 함께 속 시원한 결말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모든 긴장이 풀리고 나서 찾아오는 것은 바로 무력감입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바뀔 의지조차 없는 현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체념할 수밖에 없는 케이트의 현실이 빚어낸 무력감이죠. 저는 이 무력감이 이 영화의 목적이자 어찌보면 전부라고도 봅니다. 특히 끝에 나오는 두 개의 씬은 이 영화에는 어정쩡한 정의가 설 자리는 없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카리오>가 이런 무력감을 빚어낼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주요 장면에서의 긴장감의 유지일 것입니다. 초반부 폭발씬으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뒤 그 잔상을 바탕으로 교묘히 생략되고 가려진 구도와 음향효과를 통해 이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에서 깜짝깜짝 놀랄 부분은 많이 꼽아봐야 세 장면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미 초반부터 호되게 데인 관객들은 케이트가 한 발자국 씩 천천히 나아갈 때마다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버즈아이뷰로 묘사된 기괴한 풍경의 후아레즈와 ost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Grade : 4.5 / 5

by 루카스 | 2015/12/16 19:56 | 감동과 전율의 영화 | 트랙백 | 덧글(2)